상담자는 진정한 수행자(修行者)
현 진로상담학회장
현 153심리상담센터(포항/경주/부산)소장
현 김 상 철 부부클리닉소장
도둑이 훔치는 게 물건이라면 상담자가 훔치는 건 마음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훔친다는 게 어디 배운 지식과 기술로 될 수 있겠는가? 마음을 훔친다는 건 결국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내담자와 분리가 아닌 진정한 一心, 통(通) 하는 게 아니겠는가? 채움과 심음이라는 교류의 과정을 통할 때 너와 내가 비로소 존재하게 될 것이다. 작금의 현실에서 나를 포함하여 상담자들을 보면 상담자인지 상담기술자인지 염려와 걱정이 앞 설 때가 많다. 상담을 시작한지 어언20여년, 시작할 때는 호기심과 열정하나로 내담자를 대하였으며, 자그마한 문제라도 건지려고 머리를 굴렀다면, 지금의 나는 내담자의 문제보다, 나는 진정한 상담자인가?라는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게 되고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상담학박사를 취득하고 현장에서 수년째, 상담을 하고 있는 어느 상담자와 대화를 나누던 중, 자신은 상담을 하면서 한 번도 실패를 한 적이 없었다라는 말을 듣고, 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장자의 덕충부’편에 명경지수(明鏡止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맑은 물과 고요한 물이라는 말로, 티끌하나 없이 깨끗한 마음을 의미한다. 상담자도 인간이기에 갈등, 후회, 욕심, 열등감, 시기, 초조함 등이 나의 마음을 지배하므로 명경지수와 같은 상태를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유래는 춘추시대 노나라의 왕태라는 사람은 죄를 짓고 형벌을 받아 다리하나를 잃었고, 외모는 볼품이 없었는데도, 학문이 높고 성품이 인자해 공자와 비견 할 정도로 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공자의 제자 상계가 못마땅하게 여기며 공자에게 “스승님 왕태라는 사람은 어떻게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것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공자는 다음과 대답했다.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고자 할 때 흐르는 물처럼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평화롭게 할 수 있는데, 왕태가 바로 그런 사람이니라. 왕태는 감정이나 쾌락에 이끌리지 않고 덕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에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줄 아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니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많고, 그들이 하나같이 올바른 가르침을 얻는 것이니라.” 35년전 신학을 공부할 때 노교수님께서 하신 말 씀 가운데 지금도 늘 내 마음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열심히 공부를 하되 다 배운 뒤에는 이론을 버려야 한다고, 그래야 진정한 자기의 색깔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상담이라는 학문이 거의 대부분 우리의 것이 아닌 서양학문으로, 공부를 할 때마다 어딘가 모르게 내 몸에 맞지 않은 부자연스러운 옷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래서 다시 수년째 동양고전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발견한 사실은 전에는 관심분야가 나가 아닌 주로 타인, 사물, 환경, 소유, 세상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끊임없이 나를 찾고 나를 다듬어(修心)가기위해 공부하고 있다. 한 사람을 상담하더라도 나의 혼신을 다하여 머리가 아닌 마음(心眼)으로 다가가기 위하여 오늘도 몸부림치고 있다.
논어에 이런 구절이 있다. 자왈 학이불사즉망하고 사이불학즉태니라(子曰 學而不思則罔하고 思而不學則殆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생각하는 상담자,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처럼 먼저 자신의 통찰(洞察)을 위해서 항상 수행(修行)하는 자세로 성장하는 상담자가 되었으면 한다.
디지털시대에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한번쯤 아날로그적 사고와 삶으로 고민해봤으면 한다. 바쁘게 쫒기면서 산다는 건 그만큼 일이 많고, 수입이 많다는 게 아니겠는가? 그러나 상담자은 명예와 소유에 가치를 두는 것 보다 존재의 가치를 두고, 자신은 신으로부터 상담자라는 사명의 부름을 받은 자세로 누가 자신을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던, 연연하지 않고 상담에 최고의 행복가치를 두고 서두르지 않고 오늘도 황소걸음으로 뚜벅 뚜벅 걸어갔으면 한다.